열 번째 연결과 대화 - 홍콩아트센터(Hong Kong Arts Centre)
열 번째 연결과 대화
2020년 8월 12일, 수요일
홍콩아트센터 (Hong Kong Arts Centre)
프로그램 매니저, 이안 룽 (Ian Leung)
뉴 커넥션의 대화는 시간이 흐르며 또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잃은 것으로부터 지금의 현실을 두껍게 읽어내는 것이 지금의 최우선 과제이다.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며 소소한 발견들을 이어가는 것은 이 시기를 마주하는 우리에게 힘이 된다. 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달라지는 우리의 역할을 고민하며, 변화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홍콩아트센터, 이안 룽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와 새로운 생각
코로나19 직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미 90세를 넘기신 나이었다. 만약 몇 개월을 더 사셨다면 코로나19 대유행을 우리와 함께 겪으셨을 것인데 이런 상황 속의 연명이 과연 할아버지께 더 많은 편안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을지 의문이 든다. 고령자의 경우 코로나19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유행으로 면역력 가장 낮은 사람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가까운 미래에 전래 없이 많은 세계적 위기가 닥칠 것이다. 지구 온난화, 수자원 위기, 식량 위기가 있으며, 위생 문제 등으로 또 다른 전염병의 대유행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다음에는 청년층이 더 취약하게 반응하는 대유행이나, 중장년층이 더 취약하게 반응하는 대유행이 닥칠지도 모른다. 나는 대유행이 보여주는 은유 혹은 그림자가 훨씬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는 사회의 구성 계층 중 한 세대를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 한 연령층을 전부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세대가 모두 죽어서 이들을 전부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어떻게 답을 할지 머릿속에서 리허설을 해봐야 한다. 공상과학 소설의 줄거리 같은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넷플릭스 영화 중 버드 박스(Bird Box)라는 유명한 작품을 봤는데,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눈가리개를 해야 하며, 눈가리개를 벗고 무언가를 보는 순간 자살 시도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게 된다. 당연히 은유에 불과하지만, 현실에서도 대유행이라는 모습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실제로 나의 친구들 중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을 잃은 이들도 있다. 홍콩의 몇몇 노인 요양시설에서 대규모의 감염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곳에서의 사망률은 거의 60~70%에 달한다. 살아남은 노년층이 다시 이 곳으로 돌아가서 주변에 익숙한 얼굴이 전부 사라져 버린 텅 빈 시설에서 지낼 수 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내가 이야기 했던 한 세대의 몰살이란 바로 이런 현상을 말한다. 이게 코로나 기간 중 내가 겪은 개인적 경험이다. 세계적 위기는 현재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더 자주 발생하며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 극장, 현실을 연습하는 행동의 장
코로나19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시급함을 주었다. 사실 이는 이전에도 지향했던 것인데, 예술이 본연의 학제 간 교류와 실험에 초점을 맞추고 관객을 모객 하는 일들을 넘어서서,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어떤 통찰력을 얻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나아가 심지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창의적 사고를 위한 해결책과 시나리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술은 넓은 영역에 걸친 인문학으로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도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예술가와 예술 창작의 본질적 성향이다. 예술가는 마치 자석처럼 여러 학제와 쟁점들을 예술로 끌어들여 지금의 사회적, 세계적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프로그램을 선보이거나 어떤 작업을 초청한다면, 어떻게 그 작업을 이용해서 참여자들에게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이 행동이 되었다고 하거나, 아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이 말한 것처럼 토론 연극(Forum Theater)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극장에서 현실을 연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점점 더 부조리해지는 현실을 예측하거나 이해하고, 어떻게 그 속에서 길을 찾을지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 행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적인 정신세계에만 머무르거나 개인적으로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코로나19가 우리를 온라인으로 밀어낸 지금은 주어진 기술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버드 박스를 다시 예로 들면, 그 이야기의 은유로부터 코로나19를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통찰력을 이용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공연 후 워크숍을 하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 정보를 머릿속에서 전부 녹여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행동의 시급함을 더 가깝게 인식하도록 했다.
# 극장이 코로나19를 마주하는 또 다른 방식
홍콩아트센터는 하우스 뮤직 시리즈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하나는 야외 전시회인데, 보이는 화면은 개인 소유의 건물에서 진행된 전시회다. 이 곳에서 음악가가 라이브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을 실황으로 방송했다. 전시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공연 공간을 조성한 후 음악가를 초대해 디제이와 함께 전시를 배경으로 한 시간 동안 연주를 했다. 작품을 온라인으로 선보이던 초기에는 단순히 영상 감독, 조명 스태프, 음악가와 함께 우리 공연장 내에서 공연을 하고 이를 실황으로 방송하는 식의 작업을 했다. 공연장 자체는 아무도 올 수 없는 텅 빈 장소였지만, 영상, 조명, 음악 스태프는 모두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매달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보다 더 전의 영상을 보면 - 아마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작업 방식인데, - 해상도가 낮고 조명도 흐릿한 데다가 눈높이에 카메라 구도가 고정되어 있다. 쇼핑몰 방문객이 뒤에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에 온라인은 보너스, 혹은 주변적 작업에 불과했다. 고작 몇 백 건에 불과한 영상 조회수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명, 영상 감독이 참여한 작업을 보면 쉽사리 4,000건을 넘긴다. 엄청난 조회수는 아니지만, 우리가 소규모의 예산으로 더 세련된 프로덕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시청자 맞춤형 온라인 공연을 제공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지금까지가 극장이 변화를 추구했던 첫 단계였다면, 이제 우리는 두 번째 단계를 생각하고 있고, 11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멘티미터(Mentimeter)라는 프로그램은 실시간으로 요청이나 질문을 할 수 있는 앱인데, 주로 강좌에서의 설문이나 여론조사를 목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멘티미터에서 개설자가 질문을 던지면 참여자들은 앱에서 답변을 할 수 있고, 앱은 그 결과를 즉시 화면에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앱이 창작의 진행과정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공연을 제작하거나 대본 리딩을 할 때 관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거나 질문을 하고 마이크를 돌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맘에 들어했는지 파악했다. 이제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관객 설문 조사를 훨씬 더 잘 진행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이 소위 말해 프로그램 이면에 숨게 되는데, 실제로 마이크를 쥐고 이야기할 필요 없이 핸드폰 클릭으로 답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공연을 즐겼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그 결과를 즉시 얻을 수 있다. 부끄러워하거나 공연을 별로 즐기지 않았다는 답변을 하는데 민망해할 필요가 없다. 보통 현장에서 이를 진행하는 경우,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게 놔두고 자신은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손쉬운 도구를 사용하면 모두가 쉽게 참여를 할 수 있게 된다.
멘티미터 www.mentimeter.com |
나는 이러한 도구의 사용을 더 확장하고 싶다. 그래서 극작가와 논의를 통해 관객이 실제 공연에 참석하기 전에 관객을 준비시킬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여성을 틴더 앱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는 내용의 작품이 있었다. 이 연극은 집에서 아버지가 데이트 준비를 위해 서둘러 옷을 입는 동안 아들이 아버지의 데이트 상대와 채팅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가 같은 여자를 만나고 있는지 모른다. 공연 전에 멘티미터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그들 중 몇 명이 온라인으로 데이트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혹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온라인으로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관객을 아버지나 아들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해준다. 반드시 남자만 답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닌 일반적 질문이다.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공연에 더 깊게 관여할 수 있게 해주는 워밍업이다. 아주 쉽게 도입해 드라마와 공연계에 통합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더 나아가, 만약 극작가가 동의한다면 관객이 장면을 선택하도록 극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관객이 직접 어떻게 줄거리를 전개해 나갈지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개의 앵글과 3개의 카메라를 준비해, 각 카메라가 드라마의 장면 A, B, C를 대변하고, 관객에게 카메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해 어떻게 공연이 진행되기를 원하는지, 옵션 A, B, C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연자의 입장에서는 결국에 가장 많은 선택을 받는 선택지 하나로 결정이 날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장면만 보여주면 된다. 배우들은 관객이 선택하는 카메라로 서둘러 이동해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모든 극장 공연에 도입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의 진행 과정에서 대본 리딩을 할 때나, 관객의 의견을 받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 도구를 사용해 가능성을 확장하고 관객으로부터 더 큰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2단계 작업이다.
3단계는 아직 논의 중으로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도시계획과 관련된 프로젝트로,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공산주의, 사회주의적 미학이 들어간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프로젝트다. 바우하우스는 다수의 모듈식 주거공간을 구축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주거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이었다. 이 모듈식 주거 공간에서 자란 세대에게 자신의 주거 공간은 다른 이들의 주거 공간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콘크리트로 만든 매우 차가운 느낌의 공간이었다. 공간 내 많은 기능이 디자인되었지만 결국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버려진 공간이 많고,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음산한 건물들이 베를린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생겨났다. 이 프로젝트는 5개의 도시에 걸쳐 이런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5개의 도시 중 하나로 홍콩을 선택했는데, 왜냐하면 홍콩에도 이런 모듈식의 고층 아파트가 있어서 자신이 사는 베를린과 비슷하면서도 흥미로운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5개의 도시를 돌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논의를 했다. 홍콩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는 공연을 선보일 뿐 아니라 홍콩의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를 초대해 워크숍을 열고 공동 거주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건축가로서 어떤 공간을 디자인해야 유기적이고 인간 친화적이며, 사람중심적인 활동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온-오프라인 웨비나 워크숍은 공연과 떼 놓을 수 없는 핵심적 부분으로 둘은 같이 진행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연은 이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이 예술가를 베를린에서 홍콩으로 초대하는 것은 단지 미끼에 가깝다. 하지만 이 예술가의 제안과 논의 주제는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훌륭한 지식을 활용해 우리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연을 통해 정서적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지적인 정신세계를 자극해 공동 거주공간이란 무엇인지 사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거주는 지금의 모습이어야만 하는가, 큰 공용 거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떠한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동의 주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여러 이슈들이 새로이 대두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어쩌면 코로나19 때문에 이런 접근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공연이나 전시를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도록 매개하는 나의 기본적인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새로운 사고를 제안하는 예술,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역할
예술이 궁극적 해답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필수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있다면 똑같은 질문과 접근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의 사각지대를 발견하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와 정반대의 작용을 한다. 제안을 하고, 연구를 하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나 문제의 구조를 세우고,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과학적 연구처럼 점점 좁혀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정(negation)을 통해 다수의 가능성 중 해답이 아닌 것을 제해 나가며 궁극적 답을 찾는다. 하지만 예술은 복합적인 것을 다루어 나가면서 더 단순해 보이도록 만든다. 새로운 조명을 비추는 것이다. 예술은 사회적 변화, 희망, 인류의 발전을 위한 노력의 촉매제다.
물론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도 중요하다. 예술가로서 나에게 미학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다. 우리가 교육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심미안을 키우고, 전문성을 길러 미학을 찾는다. 여전히 관객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과 전시를 찾게끔 하는 것은 전문가로서 예술가의 본질적 역할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심미주의는 점점 더 탈중앙화 되어야 한다. 나는 전통적/엘리트주의적 큐레이션, 즉 한 명의 큐레이터가 축제 전체의 구조를 짜서, '이 한 가지에 집중을 하자, 이 것이 가장 시급한 컨템포러리 이슈로 우리는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요즘 유튜브에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은데, 이들이 예술기관이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에서 일하는 탑 큐레이터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거나 인기가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전통적인 구조에서 큐레이터들은 엘리트주의 집단, 패널리스트, 정부 관료, 민간 분야의 지지에 의해 선정된 이들로 자신을 선정한 집단의 가치를 대변한다. 하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들이 상호작용하는 장이 확산된다면, 광주비엔날레나 상하이 비엔날레는 점차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현실에서 열던 권력지향적 행사들은 빠르게 탈중앙화 되고 있으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관이자 공간으로서 우리는 이 전개를 받아들여야 하고, 빨리 받아들일수록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
# 어떻게 관객을 우리의 미학적 담론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가 말하는 미학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구축하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관객이 스스로의 미학을 정립하기 원하지만, 미학에는 일부 본질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아무것이나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사기를 치는 것이다. 마치 설교를 하듯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작업과 공동 학습을 통해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초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살 얼음을 걷는 것과도 같아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예술가로서의 직감을 사용해 파악하려 한다.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신의 팔로워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올바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는 잘 생각해봐야 하는 질문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주제 자체라고 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구도다. 큐레이터나 프로듀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구도로 질문을 던질 것이고, 어떤 플랫폼을 통해, 동등한 교환을 지향할 것인가이다. 이제는 바텀업(Bottom up)의 구조를 더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질적인 부분은 유지되어야 한다.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정에 따르는 대가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결정이 뭔가를 희생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단순히 원하는 것만 변호하고 반대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고민으로부터의 기반이 구축된다면 예술계는 완전하게 변모될 것이다.
몇 년 전 영국에서 '하우더라이트겟츠인(HowTheLightGetsIn)'이라는 축제가 열렸는데 철학과 음악을 혼합한 축제였다. 코로나19가 등장한 이후 이 축제는 가장 매끄러운 전환을 한 축제가 되었다. 이전에는 큰 텐트와 카니발 공간에서 간담회와 음악 공연을 조직하고, 아주 철학적인 논의나 강좌를 한 후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즐기는 형태였다. 하지만 철학적 논의는 줌으로 진행이 가능하고, 음악은 손쉽게 스트리밍이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에, 현재 이 축제는 가상공간에 웹사이트를 마련해 가상으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집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티켓을 구매해, 음악과 철학적 논의를 즐길 수 있다. 매끄러운 전환에 성공한 최초의 축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과 다른 학문, 이 경우 철학의 간 학문적 접근을 온라인에서 진행했다. 이런 조직을 하는 데는 일류 큐레이터가 필요하지 않다. 일류 전문가는 발제자, 음악가다. 이런 전문가만으로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음악이 혼재하는 축제를 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큐레이터의 소개글은 필요가 없었다. 이 축제는 단순히 온라인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을 다양한 아이디어가 혼재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 공연예술의 새로운 시도와 접근 방식
'매니쿠스 고잉 온라인(Meniscus Going Online)'이라는 프로젝트는 홍콩 출신 안무가 두 명, '고스트와 존(Ghost and John)'이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이들은 과학도로 한 명은 해양 과학, 다른 한 명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26명의 댄서, 배우, 공연자를 한 공간에 줄 세우고, 몰입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후 이 콘셉트를 온라인으로 옮겨와서 구축했는데, 사람들이 돈을 내면 코드가 발송되고, 공연 시간에 맞추어 코드를 입력하면 클릭을 하면서 하나씩 공연 관람을 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각 공연은 1분에서 최대 3분까지 진행된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담은 공연도,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공연도 있고, 노르웨이 사람이 도시 괴담을 이야기하는 공연도 있고, 한 여자가 도마에서 음식을 썰면서 자신이 연인과 헤어진 경험을 말하는 작품도 있다. 26개의 짧은 영상을 보는 과정 내내, 계속 A와 B 둘 중에 선택을 하게 된다. 영상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다음 영상을 클릭할 수 있고, 그러면 다른 공연을 볼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영상을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영상을 보게 되고, 모든 콘텐츠를 보기 위해 매번 다른 선택지를 고르게 된다.
유사한 작업으로 홍콩 예술가 그룹이 참여한 네덜란드 프로젝트인 '호텔 나이트(Hotel Nite)'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예술가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한 후 정해진 며칠 동안 24시간 공연이 지속되는 이벤트 캘린더를 게시했다. 또한 가상 전시공간도 마련해서, 마치 호텔방 같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미니 자서전 형태로 게시된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0명 남짓의 홍콩 예술가가 각 5분 정도 길이의 작품을 만든 후 3개의 작품을 15분 길이의 쇼릴로 합쳐 한 공간에 게시하였다. 홍콩의 독립 예술가들의 작업도 있다. 이들은 예술을 사용해 코로나19와 정치적 혼란이라는 현재의 상황에 대응했다. 각 작품은 3-5분 정도의 짧은 영상으로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고스트와 존'과 같이 복잡하지 않은 영상 작품이다. 극장 공간 내에서 10여 개의 짧은 공연이 연이어 벌어진다. 홍콩의 예술계는 자체적으로 그룹을 조직해 형성된 국제적 플랫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의 커미셔닝을 통한 작업이 아니라 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작업을 확장하였다.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역시 비슷한 작업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30명의 배우를 초청해 분 단위로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시간을 주고 아무거나 원하는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온라인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골라 이들이 빈 공연장 공간에서 선보이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공연장을 보유한 예술 기관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공간과 라이브 스트리밍 지원 스태프라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앞서 소개한 '매니쿠스 고잉 온라인'과 '호텔 나이트' 두 공연만이 티켓을 판매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80홍콩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였다. 한국 상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홍콩 기준 80달러는 매우 적은 금액이다. 우리는 맨티미터와 관련한 작업도 유료화할 생각을 하고 있다. 아주 매력적인 출연진을 참여시키거나 미적인 감각이 있는 예술감독이 공연을 설계하도록 하려 한다.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초대: 빈 극장에서(An Invitation: On Empty Theatre)' 서문 |
# 공연예술의 디지털화, 온라인에서 가능한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연극을 예로 들면, 온라인에서 실행이 가능한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왜 그 부분을 현장에서 실행해야 하는가. 물론 온라인이 현장을 대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장 공연예술의 매력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극장 안에서 느끼는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하에서 관객의 경험 중 일부를 온라인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이 참여를 최대화하고 의미를 최대한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관객들이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은 온라인에서 심지어 더 짧아져서 최대 5~10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텔 나이트'의 '회전목마(carousel)' 콘셉트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각 작품 별 지속 시간이 최대 5분으로, 매 5분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50분 동안 짧은 5분짜리 작품 10편을 보는 셈으로, 연이어 관람해도 호기심과 긴장감이 지속된다. 이와 관련해 연출 및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들 또한 이 5분을 매우 흥미진진하다고 느꼈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것이다. 조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현장 공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나 카메라가 사용되면서 어떻게 책상에 앉아서 또는 휴대폰을 통해 온라인으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시점을 변화시킬 것인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안무가는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욕조 안에서 목욕을 하면서 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거품 목욕을 하면서 공연 관람에 몰입하는 것을 의도하고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온라인이기에 할 수 있는 공연 형태다.
이제 오프라인이 불가능하니 온라인을 대체제로 쓰자는 식의 담론은 의미가 없다. 오프라인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하고, 온라인은 완전히 새로운 공연 예술 상품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목욕을 하면서 댄스 공연을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데, 이 것을 완전히 뒤집어 공연장에 가서 댄서들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일으켜 온라인 관객을 개발하는 것은 예술가의 책임이다. 이는 또한 예술가에게 주어진 큰 기회이기도 한데, 이는 자신만의 팔로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예술가는 핵심 오피니언 리더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고, 프로듀서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기 위해 필름 감독과 협력을 할 때 보면 음악 콘서트가 마치 텔레비전 방송국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3~4개의 카메라가 설치되고, 큰 LED 모니터를 통해 카메라에 잡히는 영상을 본다. 스트리밍 되는 영상은 노트북으로 연결되어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모니터링한다. 2개의 카메라는 이동형이고 하나는 고정되어 있다. 영상 감독은 계속해서 라이브 편집을 한다. 음악이 시작되고 분위기가 바뀌면 1번 카메라로 바꾸고, 그다음 2번, 그 다음 센터 카메라로 옮겨간다. 이 모든 흐름과 이동은 온라인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스태프는 관객과 교류를 한다. '다음에 나올 노래는 발표된 적이 없는 노래로 듣고 나서 어떤 가사를 들었는지 이야기해보자'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국과 마찬가지로 호스트와 진행자가 있고, 진행자는 결과물들을 상영하고 실시간 피드백 언급하며 분위기가 지속되도록 한다. 공연을 위한 공간과 관객을 위한 공간은 나뉘어 있지만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물론 이런 식의 공연은 비용이 더 많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또 다른 방식의 교류와 더 깊은 관객 참여를 이뤄낼 수 있다.
온라인 공연의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표를 구매하고 극장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에 익숙한 가장 보수적인 극장 관람객들 조차 일상에서 디지털 기술과 모바일을 사용한다. 2시간 동안 지속되는 공연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거나 관객들의 주의를 적어도 5분 동안은 끌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될 것이다. 디지털 마케팅에는 이미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우리는 창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 통합한 후, 다시 쪼개어 우리를 노출시키는 데 사용해야 한다. 짧은 10초짜리 인스타그램 비디오를 게시하는 작업은 이미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되었다. 관객 개발을 위해 새로운 전략적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진화해 나가야 한다.
# 통제와 규율을 넘어서, 국제 이동성의 미래
국제 이동성의 미래는 탄소 발자국과 연결된다. 나는 무역 박람회 같은 대규모 공연예술 행사나 아트마켓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국제교류가 반드시 이런 방식으로 일어나야 하는가. 우리는 비행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가. 평균 50개의 공연을 보고 하나를 선정하면 비로소 선정된 예술가들이 국경을 넘어 공연을 올린다. 코로나19 이후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는 매체로서 온라인 게시 방식이 부상했고,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면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게 되었다. 프로듀서나 공연장을 거치지 않고 티켓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공연을 혼자서 선보이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유튜버나 문화 사업가처럼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자신 스스로 카메라를 설치하면 된다. 새로운 현실이 우리 앞에 닥쳤는데, 그렇지만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우리의 역할이 질문을 어떤 구도로 던질지, 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처럼 현장에 뛰어들어 예술가를 선보이는 식이 아니다. 이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서 우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프로듀서로서 우리는 예술가를 위해 특정 온라인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제작을 한다. 앞서 말했지만 먼저 무엇을 온라인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오프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고 대체가 불가능할 때만 이를 오프라인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큐레이팅의 조건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적 제약이 많아지고, 우리는 이전처럼 만나서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하는 이야기는 있다. 전화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지금의 나처럼 가상의 배경을 만든 온라인 회의실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협력 요청이나 투자 요청은 여전히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베를린 연출의 바우하우스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온라인으로도 일정 부분 실행이 가능하다. 여전히 실제 공연을 홍콩에서 선보이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청을 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직접 방문해 공연을 먼저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접 방문하는 것은 이미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해외에 직접 방문하는 것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게 기준을 찾을 수 있다. 도시 계획, 도시 공간, 건축의 영향력 그리고 인간의 생활 여건에 대한 연구 자료가 현재 나의 관심사 및 관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스스로가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과 합치하는 경우, 방문이 합리적이라면 방문을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내가 독일에 방문을 할 필요는 없다. 예술은 더 이상 완전한 미학적 기준이나 예술적 가치로만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어떤 질문을, 어떤 구도로 던지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딱 맞는 질문을 던진다면, 프로젝트의 접근이나 진행과정 자체로부터 이미 흥미로운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 정치와 사회의 변화가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
홍콩 내 국가보안법의 시행 이후, 예술계에 눈에 보일 정도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체 검열은 이미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은 단지 우리가 이제 어떤 사실을 인지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지 명문화했을 뿐이다. 같이 작업하는 예술가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법을 어기게 해서는 안된다. 함께 일하는 조명 설치 작가 한 명이 페이스북에 '어떤 이들이 최근에 나에게 다해도 되는데 정치만큼은 그냥 놔두라고 말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많은 이들이 이 글에 공감을 표했다. 그다지 놀라운 상황도 아니라고 보는데, 국가보안법 시행 이전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에게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정치는 언급하지 말자고 말한다. 우리 조직은 자체적으로 재원을 조성하는 민간단체이지만 여전히 정부와 매우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어떤 성명도 내지 않고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며 조직의 대표가 고수하려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전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예술가와 작업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정치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이 조명 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순간, 이미 이 예술가가 뭔가 도발적인 작업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 예술가를 초청한다는 것은 그가 내는 목소리에 동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듀서나 큐레이터는 그 속에서 방향성을 탐구해야 한다. 때때로 균형의 전략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음양이론처럼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것이다. 후폭풍이 오거나 SNS에서 공격을 받을 때를 대비해 탈출구를 마련하고 보험을 드는 것이다. 이는 예술가에게 작업 의뢰를 할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전략이다.
# 뉴 노멀의 도래와 프로듀서의 역할
요약해보면, 지금의 뉴 노멀 시대, 혹은 온라인-오프라인 하이브리드의 시대에, 예술은 미적 즐거움과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사회적 목적을 달성할 뿐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을 약속하게 하는 데 있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쇼나 공연, 전시 등의 경험과 관련해, 프로그래머나 프로듀서에게 콘서트홀이나 극장을 넘어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력한 온라인 플랫폼인 채팅방을 활용할 수 있다면, 여기서 손쉽게 작품의 소재, 관련 링크, 아카이브, 라이브러리, 사진, 영상 등을 공유할 수 있다. 예술적 경험은 관객에게 영향을 미쳐 이들의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키거나 이들이 의식적 선택을 내리도록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관객이 활용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 부, 자원이 존재한다. 또한 이러한 예술적 경험이 우리를 이끌어 인류를 위한 선을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큰 고민거리나 또 다른 대유행, 수자원 고갈, 특정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과 같은 위기 상황이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전에는 현실을 반영하는 지적인 경험, 강력하고도 극적인 경험이 우리 앞에 선보여지는 유일한 존재였는데, 지금은 하이브리드적 성격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연결을 하고, 지원을 받으며, 자원을 얻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관객 경험과 참여의 탈중앙화 및 민주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속에서 예술은 더 활발하게 기존의 학제를 넘나드는 작업에 착수하고, 우리의 앞 길을 밝혀주는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탐색한다.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계몽하는데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변화를 이끌 힘을 얻는 집합적 지혜에 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변화를 일으킬 책임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이제는 동시대적 위기에 대응을 한다는 목표를 지지하는 사람 10만 명을 쉽게 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황이 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이안 룽(Ian Leung)은 홍콩아트페스티벌에서 5년 간 프로그래밍, 프로듀싱, 투어, 관객개발, 예술교육 등의 업무를 경험했다. 이후 2013년 홍콩아트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공연예술, 공공예술과 커뮤니티 아트, 관객 개발 프로그램 등을 담당하고 있다. 2016년 홍콩예술발전국(Hong Kong Arts Development Council, 香港藝術發展局)의 장학 프로그램으로 예일-중국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홍콩과 유럽의 다양한 축제들에서 협업을 통해 공연, 레지던시, 공공예술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으며, 다원예술 분야의 관객 개발을 위한 실험과 방법론 찾는 작업도 진행한 바 있다.
홍콩아트센터(Hong Kong Arts Centre)는 복합예술공간으로, 홍콩의 선도적인 창작 작업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홍콩과 해외 예술계를 연결하고 예술적 교류를 촉진하고 촉망받는 예술가들을 매개하는 장으로 기능해왔다. 홍콩 유일의 비영리 복합 예술 기관으로,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사업들을 펼친다. 전시, 상영, 공연 등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 협업을 통해 홍콩을 비롯한 이외의 세계 곳곳의 협력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대화/글: 박지선, 임현진, 최석규
번역 : 박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