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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15명의 해외 동료들과 만남 이후 우리들의 대화

 

박지선, 임현진, 최석규

 

 

 

해외 동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던 6월부터 9월을 지나 연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올해 초에는 우리가 한해 내내 코로나와 함께 살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해외 동료들과의 대화를 마친 지금 각자 고민과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큐 :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시간을 ‘멈춤(Pause)과 정지(Stop)’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생각해봤다. 어떤 것은 잠시 멈춤(Pause)으로, 다른 것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것은 도저히 회생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전히 정지(Stop)해서 끝내야 한다. 15명과 인터뷰를 하면서, 동료들이 준 교훈은 무엇을 잠시 멈추고,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다. 예를 들면, 해외 투어의 경우 이제는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외에도 나의 관점에서 완전히 멈추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미래 지향적 협력과 상호 연결(Interdependence)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이제 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건 예술생태계의 구조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민간 영역이 독립적, 예술적, 경제적 지속 불가능한 현재의 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 단기 지원과 프로젝트 중심인 현재 예술지원의 구조가 사람에 대한 지원, 중장기 지원의 구조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버넌스, 민간과 공공의 협력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면 회의적이다. 구조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데, 빠른 시간 내 큰 변화가 일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진 :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의미 있는 관찰자가 되어서 예리한 이야기를 잘 뽑아내는 일이 지금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코로나19가 끝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몇 개월이 지나면 함께 고민했던 것을 통해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염병은 여전하다. 그리고 사실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나눈 대화 중, 그린 모빌리티(Green Mobility)나 딥 모빌리티(Deep Mobility)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일종의 지향점을 가지게 되었는데, 여전히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일을 해 왔던 방식들이나,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이 사회의 모습들이 사실은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뭔가를 만들어 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동기’가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은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낼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누군가는 예술을 하는 우리의 동기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것이 리서치 이후에 다짐한 바이다. 

 

큐 : 9월 캐나다 몬트리올 라 토후(La Tohu)의 감독 스테판 라부아(Stéphane Lavoie)와마지막 인터뷰가 나에게는 현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아무리 우리가 연대와 협력을 이야기 하고,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고, 타인의 변화만을 기대할 것이기에, 변화는 생각만큼 쉽게 오지 않는다는 그의 일깨움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터뷰를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내가 잘 적용하면서 실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해야 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의 많은 고민이 밀려왔다. 진짜 비전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해서, 좀 작지만 밀도 있는 방향으로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선 : 이미 알고 있던 동료들이었는데,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들이 더 친밀하고 가깝고 더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 모두가 같은 상황이여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협력을 하고, 투어나 국제교류를 해도, 한 번도 우리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문화적 차이, 상황의 차이, 자본의 위계에 의한 차이 등이 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상황을 공유한다는 지점에 있어서 이야기가 수평적이고, 더 공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인터뷰 내내 생각한 것은 예술과 실천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린 모빌리티나 딥 모빌리티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탄소 발자국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번 나왔다. 올해 새로운 프로젝트로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하고 있는데, 예술가들과 기후위기, 비거니즘, 동물권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로 레지던시를 하면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생겼다.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달리, 레지던시는 긴 시간 동안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활동과 내 삶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모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만큼 예술 활동과 내 삶이 가까이 붙어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디까지 실천을 해야 하지, 그리고 동시대 예술이 과거처럼 미학적 가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담론과 동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예술이 안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문제를 예술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해서 같이, 커뮤니케이션한다고 할 때, 그 일을 하고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는 그 이야기에 대한 것을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실천하면서 가지고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고민을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많아진다. 결국 이유가 분명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그린 모빌리티를 이야기하면서, 탄소발자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면, 국경을 넘는 교류에 한계가 생긴다.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더 하고, 나의 국제교류의 지향을 만들고, 이유가 분명해야 할 것 같다. 

 

왜 국제교류를 해야 하는가? 예전에는 내가 좋아서, 즐거워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등의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 가지고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경험과 즐거움을 넘어서 예술 생태계에 도움이 된다던가, 반드시 어떤 식으로는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더 일하기 어렵고 피곤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예술과 실천이 맞닿아 가는 방향을 찾는 것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큐: 전적으로 동의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액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내가 확신하기 때문에 액션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떻게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가 핵심 요소인 것 같다. 

 

나를 돌아보면 30대에는 예술의 미학적 형식에 대한 질문에 몰두 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마임축제를 선택했다. 움직임, 이미지의 예술 언어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후 점차로 장소성, 공간성 그리고 사운드 등 예술적 미학에 대한 고민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아시아 동시대성과 컨템퍼러리 예술, 그리고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질문들은 40대를 지나, 50대가 된 지금, 특히 코로나 시대에 예술의 형식, 미학적 측면보다 컨템퍼러리 콘텍스트(Contexts), 즉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예술가와 기획자로 이 시대의 무엇을 관객과 커뮤니티와 공유해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 것 같다. 그건 결국 예술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 보다는 예술의 역할과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물론 이런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관계성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간혹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을 이야기할 때, 액티비즘과 예술교육의 측면에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관점은 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획자로 뭔가를 다시 만든다면, 내가 왜 이것을 하려고 하고, 어떤 사회적 콘텍스트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선 피디가 이야기 한 동시대의 담론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화두이다.  

 

현진 : 무엇보다도 충분히 질문하며 되묻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 시대를 외면하려 하면 더 좌절하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에게 또 다른 근육들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대화하면서 찾았던 질문들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총 열두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각자 마음에 와 닿은 키워드와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무엇이었나?

 

큐: 마지막 인터뷰에서 스테판이 현실을 너무 일깨워주어서 생각이 많이 난다. 펜데믹이 지나가더라도 사람들은, 조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말이다. 나에게 변환과 전환을 위해서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이탈리아 알토페스트(Alto Fest)의 안나(Anna)와 지오바니(Giovanni)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변화를 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에서 변화를 생각해야 하는가? 그들이 이야기하는 축제의 정신(Principal) 즉, 기본 철학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봤다. 즉 형식을 바꾸고 대안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철학과 정신을 가지고 그것을 토대로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 것 같다. 이번 서울아트마켓의 경우도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서 팸스를 치러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국제교류와 이동성과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기본적인 기획 철학과 전략을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브라질의 페드로(Pedro)와 인터뷰를 통해서 연대는 공동의 적이 있거나, 공동의 목표가 분명하거나, 모두가 전무한 상태라면 그 절박함으로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지선 :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큐와 같다. 알토페스트 두 명의 감독 지오바니와 안나 그리고 브라질의 페드로와의 대화였다. 지오바니와 안나는 인터뷰 내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상황에서 온라인 상으로 알토페스트를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웹 페이지에 알토페스트와 관련한 영상, 책, 사진, 자료들을 모두 업로드 해 놓고, 자신들의 공간 기부자(Space donor, 축제 기간 중 자신들의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는 시민들)들에게 지인들과 가족들을 초대해 각자의 집에서 알토페스트 관련 영화, 영상, 자료들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요청하고자 한다는 생각은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이 하는 것이 알토페스트의 정신이고, 동시에 이런 프로그램을 서른 개의 집에서 한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축제가 되는 것이다. 알토페스트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도시 안에서 커뮤니티들이 예술과 함께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고민은, 축제의 중요한 정신을 중심에 둔다. 해외 예술가를 초청해야 하는데, 초청을 못하고, 예술가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예술가가 관객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축제를 못한다고 생각을 하기 쉽다. 이들은 커뮤니티를 주체로 두고 예술을 매개로 알토페스트가 지향하는 바대로 사람들이 도시를 예술로 오염시키고자 한 것이다. 결국 내가 하는 축제가 왜 존재해야 하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가 명확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한국에서는 많은 축제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장소를 옮기거나, 규모를 줄이는 방식을 택해야만 했다. 우리의 축제가 이 시대에 왜 존재해야 하고, 이 도시에서 사람들을 왜 만나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 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고민들이 얼마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들과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고, 많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브라질의 페드로와의 대화는 다른 모든 인터뷰와 큰 차이가 있었다.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유럽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는 해도 예술가 생계 지원과 창작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브라질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엉망이고, 지원도 전무하고, 우리가 인터뷰 했던 모든 상황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동료와 인터뷰를 할 때보다도 가장 열의에 넘치고, 예술적 화두를 가지고 예술가들의 연대와 협력을 많이 보여준 것이 브라질이었다. 코로나로 모두 힘든 상황에서 예술계 종사자들의 생계를 고민하는 것도 절실하지만, 이러한 시기에 예술가들은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자극과 영감을 받는 대화였다. 

 

큐: 위기와 위험은 언제, 어떻게든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플랫폼이 자기 철학을 가진다는 것은 각자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그것을 해쳐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끊임없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없을 경우에는 위기가 문을 닫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어디를 지향하는지, 나의 철학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이것이 위기를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진: 위기는 변화하지 못하거나, 변화하지 않으려고 할 때 진짜 위기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할 수 있고, 그 변화가 재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여럿이 생각하고 같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또 의미 있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면서 예술이 변화해 왔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기가 변화의 계기라는 것에 공감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다. 혼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홍콩아트센터(Hong Kong Arts Centre)의 이안 룽(Ian Leung)과의 대화였다. 이안은 따뜻하고 열정 있는 사람이지만, 냉철했다. 대화를 곱씹어보면, 이제 무의미한 예술들이 눈에 보일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 예술이 과연 사회의 해결책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지, 혹은 동시대를 제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지 물어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 예술은 도태될 것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지금의 인류에게 이 예술이 필요한가, 만일 불필요한 것이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들이다.

 

지선: 이안이 언급한 무의미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예술, 박물관에 박제되는 예술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했던 예술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와 이어지는데, 이것을 단순히 사회적 예술이라는 언어에 가두고 싶지는 않다. 예술가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와 지금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예술가가 액티비스트나 정치 활동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예술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예술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나 아름다움만을 전하기 위해 존재했던 때도 있었겠지만, 즐거움과 쾌락이 넘쳐나고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는 예술 분야에서 일하며, 예술이라는 것이 동시대, 이 시대에 직면한 삶들을 어떻게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보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사회는 굉장히 획일적이다. 모든 것들이 매체에 의해 지배되고, 획일화되고 있는데, 굉장히 모순적이다. 다양성이 존재하면서도 상당히 획일적이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카페에서 만나고, 똑같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만들어낸 콘텐츠에 매어있다. 큰 범주에서 한 방향에 놓여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을 쪼개 놓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획일적으로 가고 있는 것에 계속 틈을 내고, 길을 만들어서 획일적으로 가다가도 여기에도 길이 있네, 하면서 이쪽으로도 가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오바니와 안나가 하고 있는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술이 이런 역할을 동시대에 하지 못한다면, 결국 엔터테이닝이라는 역할에 흡수되거나 박물관에 흡수될 것이다. 결국 예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가치의 관점을 통해 시대에 필요한 예술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안이 이야기 한 바에 동의한다. 

 

현진: 이안이 언급했던 것 중, 기존의 예술계의 위계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이 위계는 언젠가 무너졌어야 했는데, 이번에 그 끝을 보게 된 셈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좋은 예술인지를 규정하는 위계, 예술의 방식과 형태를 결정하는 위계, 그리고 어떤 예술을 보여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위계가 다 무너져버리고, 의미가 없어졌다. 대신에 우리는 더 빠르게, 현장과 가까이서, 더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좋은 작업들을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일은 흔치 않은데, 2020년은 그랬던 것 같다.

 

지선: 이미 많은 위계가 무너지고 있다. 아까도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전례 없는 상황을 함께 겪고 있고, 이것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그 누구도 새로운 방법을 확신하거나, 공연예술의 미래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없다. 사실 부인하려 해도, 문화예술에 위계는 분명 존재했었다. 이러한 위계가 무너지고 나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누군가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또 만들어 질 것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것은 연대와 협력이다. 유럽은 EU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데 발 빠르게 움직인다. 벨기에 리에주 극장(Théâtre de Liège) 극장장인 서지(Serge)는 유럽과 세계가 매우 우경화되고 있고, 민족주의의 경향이 굉장히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경이 차단될 경우 이러한 경향들이 더 확대될 수 있기에 EU에서는 예술의 이동성을 이전보다 더 강조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예술/예술가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사적인 이유부터 정치적인 이유까지 매우 폭넓다. 상황을 이해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직면한 현재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기반으로 우리보다 빠르고 구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큐: 유럽극장협의회(European Theatre Convention)에서 진행한 유럽극장포럼(European Theatre Forum)을 3일간 들었다. EU는 경제/정치 공동체 아래, EU 문화와 예술 공동체 구조가 있으므로 프로그래밍을 할 때 예술가, 기획자, 예술 현장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금 기관, 예술정책 결정자들이 포럼에 함께 들어와서 앞으로의 행동 방침 등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여 정책 제안을 마련했다.

 

우리는 아시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를 각자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의 연대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가들만의 담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과 정치하는 이들과의 연대는 무엇일까? 아시아의 예술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아시아의 연대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아시아의 현재성을 토대로 개별의 작은 단위 안에서 새로운 연대로 가야 하는 것인가? 사실 한편으로는 EU의 예술 공동체 구조가 좀 부러웠다. 그러나 아시아는 우리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당분간은 장거리 교류보다는 근거리 교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유럽은 실제로 그렇게 교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연대는 어떠해야 할까? 우리 셋 모두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의 구성원이니, APP를 시작으로 아시아 내에서의 교류와 협력, 연대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야기 해보자.

 

큐: APP는 존재 이유와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좀 더 심도 있는 역할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캠프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하되, 좀 더 다양한 주제나 목적을 지닌 모임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비슷한 주제의식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하려다가 못했던 것들 중 ‘아시아의 도시’, 서울-타이베이-홍콩 등을 연결해서 무언가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제 분명한 질문들과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좀 더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 다른 하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연대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이다. 내년 하반기가 된다면 이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만, 호주, 한국, 일본 등의 지역이 정치, 정책, 경제, 교류의 개념으로 묶인다면, 예술 분야의 단기별 연대도 가능할 것이다. 

 

현진: 트래블 버블이 안전한 구역을 설정하는 것인가?

 

지선: 맞다. 그런데 안전한 구역을 설정하며 교류하는 방식의 트래블 버블의 경우, 결국 경제적인 것과 연결된다. 아시아를 본다면, 결국 한국, 일본, 대만, 호주와 같이 위험 요인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국가이겠다. 이 네 국가는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을 처음 시작했던 국가이다. 아시아의 연대에서는 항상 이런 불균형이 발생한다. 동남아시아는 쉽게 배제된다. 또 다시 예술이 이런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앞서 말했던 위계가 경제적 조건에 의해 다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시아의 연대라는 것에는 여러 층위가 있을 것 같다. 트래블 버블은 실제적, 물리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동성을 보장한다. 말하자면 백신을 사서 배급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이 되는 국가가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이 안에서 투어나 물리적인 예술의 이동과 교류는 가능하겠지만, 이러한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는 배제된다. APP가 포괄적인 의미에서 지향하는 아시아의 수평적 교류는 멤버로서의 우리의 지위적 수평도 있겠지만 경제적 위계 없이 수평적으로 교류하는 정신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지 또 다른 고민이 된다. 

 

큐: 아시아 도시 간 교류는 2016년에 제안했던 것인데, 도시 관련된 리서치를 하다가 결국 먼저 영국문화원의 한영 상호교류의 해 2017-18 사업으로 커넥티드 시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실 시작은 아시아 도시 리서치의 주제를 아시아의 도시에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속도(Speed)’로 잡고, 개발도상국의 시기를 거친 나라들이 도시의 속도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도시를 주제로 예술, 건축, 기술 등의 관점에서 살피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행정적, 구조적 문제들이 있어서 도시 간 연결을 하지는 못했고, 서울 건축비엔날레와 함께 서울에서 커넥티드 시티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레지던시 등의 형태를 통해서 지역 예술가들과 아시아의 예술가들과 결합하여 연구를 하는 등의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독자적으로 예술 작품을 생산해서 해외 투어를 가는 방식이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서 같이 유통하는 다층적인 구조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시아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도시와 예술의 관계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말이다. 

 

지선: 예술과 도시의 관계도 있지만,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방식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다. 유럽의 도시와 아시아의 도시는 굉장히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도시의 역사도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어떻게 우리의 도시를 바라볼 것인지 생각하다가 ‘속도’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과 우리 모두 하루 24시간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24시간과 우리의 방식에서 24시간은 밀도가 다를 수 있다. 속도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시아를 바라봄에 있어 속도가 빨라서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다 부정적으로 판단될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아시아의 도시를 속도라는 속성으로 편향 없이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까 이야기했던 동시대의 텍스트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고민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코로나19가 지금 모두가 공감하는 동시대의 텍스트이듯이, 속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시아의 국가와 도시를 이해할 때, 아시아의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이슈와 여러 이야기들을 다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시아에서의 연대와 교류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투어 중심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투어는 안전한 버블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시아 안에서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이슈처럼)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주제’들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전에는 우리가 이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도네시아와 우리가 함께 고민할 주제가 무엇이지? 우리가 대만이랑 무엇을 같이 고민하지? 하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시아와 우리가 자꾸 만나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접점을 늘려 나가면서, 교류와 연대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작품을 창작하고 국경을 넘어 유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공동으로 같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을 끄집어내어 예술 활동으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다.  

 

큐: 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지만 더 깊이 있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는 같은 전망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더 밀도 있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겠다.

 

현진: EU 같은 연대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아시아가 연대하려면, 예술의 경우 연구 차원에서 문화적인 연결이나 연대를 우선 시도하는 것이 의미 있는 시작이 될 수 있겠다.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매도시 결연 등을 보다 시의성 있는 주제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의 과제에 대한 연구에 참여할 도시를 찾고, 민간과 공공 영역의 주체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다. 민간에서 시작하고 제안한 것들을 반영하여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도시 간 연결과 국가 간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의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매도시 사업보다 도리어 느슨하지만 언제든 변화를 꾀하고 전환할 수 있는 연대를 상상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앞서 이야기 나눈 주제들에 대해 레지던시나 연구 사업을 할 수도 있겠고, 좀 더 행동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들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험과 실천이 없다면, 다짐이나 선언들은 쉽게 증발한다. 

 

지선: 다시 APP로 돌아가면, 2013년에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을 시작했으니 벌써 8년이 지났다. APP는 훌륭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에서 친구, 동료들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굉장히 큰 자산을 마련했고, 자발적인 참여로 좋은 모델을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음 단계의 액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을 구조화해야 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하지만 질문이 생긴다. 조직화가 싫어서 유연한 네트워크를 만들었는데, 다시 조직화하는 것이 맞는가? 현재의 질문이다. 현재 우리는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금세 증발되어 버린다. 아시아의 연대를 거대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거창하게 만들기보다는, 작지만 구체적인 활동이 드러나는 새로운 협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최근 아시아에서 작은 규모의 네트워크들이 많이 생겨났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APP), 서커스아시아네트워크(CAN), 아시아 드라마터그 네트워크, 아시아 무용 네트워크 등, 만들어졌다 사라지더라도 이런 작은 네트워크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청년 창작자 중심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도 있고, 아시아 대안 공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아시아의 작은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간의 교집합이 생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네트워크에 빨려 들어가 통합되지 않게, 이러한 단위별의 네트워크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협력들이 모여 큰 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큐: 이번 팸스에서 APP, 아담(ADAM), 아시아 댄스 네트워크, APAM, BIPAM, TPAM 등의 아시아의 네트워크들의 새로운 연대를 위한 모임을 제안해 보았다. 물론 APP는 우리가 참여하고 있어서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네트워크들은 다시 모인다는 이유에 대하여 왜, 무엇을 하려고, 갑자기 팸스가 왜 이런 것을 제안하지 등의 많은 질문과 의문들을 가졌다. 물론 팸스가 그간 한국 공연예술의 해외 마켓 개발을 지향하다 보니, 아시아 내부의 연대를 놓친 문제에서 출발하기도 했지만, 아시아의 많은 네트워크들이 모두 지나치게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모두 너무 바빠서 주변을 돌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트워킹 플랫폼의 실천적 액션과 지속 가능한 연대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페스티벌 아카데미(Festival Academy)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비공식적인(Informal) 개별 연대와 기관의 조직적 대응이 매우 균형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펜데믹 기간 중에 몇 개의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는데, 회원들이 주요 주제를 정해서 매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개별적 운영을 해 가면서도, 아카데미 주최 측에서 조직적으로 중요한 아젠다, 예를 들어 곤경에 처한 ‘레바논 예술계와 연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즉 느슨한 개인 연대와 단체의 조직적 프로그램의 균형감이 조화롭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국제교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향후 전망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작업에서부터 향후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현진: 많은 대화와 고민들을 이어갈 수 있었고, 여러 생각과 발견들을 새로이 얻게 되었는데, 이제 어떤 행동으로 이 연구를 이어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연결의 가능성, 새로운 형태의 예술 같은 단어들을 많이 썼는데, 이 질문들은 하나의 답을 지금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만족할 만한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고, 계속 연구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거리예술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서 ‘거리예술’은 기존의 예술들이 가진 범주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에서 출발했지만, 사실 최근에는 이 역시 유형화되고 하나의 장르처럼 자리 잡으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극장과 큰 차이 없이 특정한 범주를 정해 놓고 비슷한 패턴을 반복해왔던 것은 아닐까 반문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마주하며,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여기도 예술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저 사람도 예술의 관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술의 대한 사고가 확장된 것인데, 무엇이 의미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언제가 한 번 인터뷰 중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생태계가 다양한 가치들을 포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긴 호흡으로 생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거리예술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면, 거리를 이해하고 거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양식들이 이 시기를 계기로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확고하게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국제교류는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각자의 예술 작업에서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지금의 시대에 비추어 생각해보아야 한다.

 

큐: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하나는 내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하고, 그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작년부터 세 개의 주제-예술과 도시, 예술의 다양성, 포용성 그리고 접근성, 예술과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하나를 선택해서 그 밀도를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는 이전부터 계속 관심 갖고 있는 아시아의 도시 이야기, 아시아 도시 연계작업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전에 우리 기획자들이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동료 기획자가 던졌는데, 동의한다. 어떻게 생산해 갈 것인가, 즉 생산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된다. 즉, 개인의 개별적 작업보다는 어떤 연대를 통해서 하나를 지속해 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연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울러 하지 말아야 할 것, 멈추어야 할 것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쩌면 후배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나의 책임과 실천일 수 도 있다. 

 

현진: 이런 것들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Not to do list를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내가 어떤 것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한다. 

 

지선: 예술과 실천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도 동시에 국경을 넘어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 년에 한번 APP캠프를 통해 아시아의 동료들을 만난다. 매년 동료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다. 한국에서 늘 같은 환경에서 바쁘게 일을 하다가 아시아 곳곳에서 모인 동료들을 만나면 우리가 모두 다른 환경에 놓여있지만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며,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한다. 이렇게 주고받는 에너지는 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기획자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는 다음 예술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관객에게도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류는 리에주 극장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확신하고 있던 어떤 것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 주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을 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 

 

작품 투어와 같은 형태는 지양하고, 그보다는 공동의 이슈들을 발견하고 함께 논의하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올해 시작한 기후변화 레지던시는 한국 작가들만이 참여했는데, 그들과 오프라인 레지던시뿐만 아니라 2주에 한 번씩 온라인 레지던시도 진행했다. 코로나가 당분간 지속될 상황에서는 이러한 온라인 레지던시를 국경을 넘어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곳곳의 환경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자의 커뮤니티 안에서 처해진 환경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들을 찾아서 디지털 레지던시로 교류를 시작해 나가 보면 어떨까 한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의 도시를 주제로 시작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연결을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계속 들고 있다. 

 

큐: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감사할만한 것 중 하나가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과 활용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레지던시, 국제 공동 창작 초기 개발, 리서치 랩 등 많은 국제교류가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많은 난항을 겪었던, 올해의 서울아트마켓을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으로 운영했던 경험은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향후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이 국제교류와 국제 이동성의 지속적 연결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미디어와 기술(웹사이트, 소셜 네트워크, 줌, 구글 미트, 에어미트 등)에 대한 다양한 활용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면, 기술적 장치들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디지털 플랫폼의 기획 철학, 전략 혹은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술 개발 초기 단계에 테크놀로지 전문가와 함께 기획을 시작해야만 한다.

 

 

 

 


인터뷰와 만남에서 함께 나눈 우리의 질문들

2020년의 끝에서 한 해의 질문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인터뷰를 해 준 많은 동료들은 코로나를 겪으며, 옆집의 이웃과 내가 사는 도시 그리고 지구를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공연예술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질문은 처음보다 더 많아졌다. 대화 속 질문들을 공유한다. 

 

코로나19 이후, 나와 우리의 현재

 

Q. 코로나19가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Q. 격리와 봉쇄의 시간은 어떠한 경험으로 남았는가?

Q. 프로듀서/예술가로서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Q. 스스로가 설정한 사회적 역할에 변화가 있는가?

Q. 내가 속한 조직의 변화와 대응은 어떠했나?

Q. 공동의 회복,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Q. 위기로부터 얻은 것들은 무엇인가? 

Q. 새로이 발견한 가치들이 있는가?

Q. 변화를 위한 실천적 행동은 무엇일까?

 

예술계의 변화와 새로운 화두

 

Q. 팬데믹 이후 민간/공공의 대응은 어떠했나? 

Q. 팬데믹 이후 문화예술계 정책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Q. 공연예술계는 안전을 위한 새로운 규범들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Q. 공공장소와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공연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Q. 정치와 사회의 변화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했나?

Q. 팬데믹 시기에 공공극장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일까?

Q. 팬데믹 시기의 네트워크과 플랫폼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Q. 관객들의 태도와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Q. 다시 관객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Q. 동료들 간의 연대와 협력은 위기의 극복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Q. 새롭게 대두되는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는가? 작업의 관점은 어떻게 변화하나?

Q. 공연예술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Q. 팬데믹 이후 발견하게 된 새로운 예술의 형식이나 발견이 있는가?

Q. 예술과 기술의 결합에 대한 연구와 투자, 디지털화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Q. 예술과 기술 분야의 협력, 투자와 지원이 확장되고 있는가? 새로운 지원체계가 필요한가?

Q. 디지털,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Q. 디지털,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일까?

Q. 위기 이후, 동시대 예술/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Q.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국제 이동성의 새로운 이유, 새로운 방식

 

Q. 기존의 국제교류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Q. 새로운 국제교류의 방법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Q. 국가 간 협력과 연대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Q. 상생하는 연대를 위해 국제교류는 어떠한 변화를 고민해야 할까?

Q.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국제교류의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일까?

Q. 우리가 여전히 교류하고 협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Q. 위기에 대한 공동대응으로서의 연결과 연대는 어떤 것일까?

Q. 새로운 예술의 발견을 향한 연결과 연대는 어떤 것일까?

Q. 지속적인 연결과 연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Q. 아시아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